책여우들의 시낭송~~

 

                                                                                                                   7월 9일.

 

 

*정호승 시인 : 정호승 시인은 드물게도 당대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또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들과 어딘가 친연성을 보여주는 (낯익은) 시인이기도 하다.

서정주의 <자화상>풍을 빌려서 말한다면,

"어떤 이는 그에게서 윤동주를 보고 가고/ 어떤 이는 그에게서 김소월을 보고 가고/ 또 어떤 이는 그에게서 한용운을 보고 가"

 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시 세계가 그만큼 한국인의 시적 감수성에 익숙하며, 한국인들이 좋은 시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어떤 시적 원형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1973년부터 그와 알아왔는데 그는 한결같은 마음과 한결같은 꿈과 한결같은 순수와 한결같은 정결한 자세로 35년의 시작 생활에 충실해 왔다.

그가 다루는 소재, 주제, 지향은 조금씩의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그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맑은 꿈'이라는 그 첨성대적 시학은 불변하다.

정호승은 동일성의 미학에 기초한 시작으로 낯익은 느낌을 주면서도 선(禪)적 미학과 역설의 언어로 인해 낯선 충격을 동시에 주는 진귀한 시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 김승희 해설 <참혹한 맑음과  '첨성대'의 시학> 중에서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폭풍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푹풍 속을 나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깊어갈지라도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이 지나간 들녘에 핀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결혼에 대하여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 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 본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국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쳐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 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 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밤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 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책여우모임은,

시낭송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방학동안 가족과  신나는 여름을 계획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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