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을 가꾸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제민일보. 08년06월10일)


토요일이면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다. 생글거리는 얼굴들을 보노라면 덩달아 즐겁고 반갑다. 일 년 가까이 꾸준히 책을 빌려가는 한 여자아이가 몰고 온 아이들이다. 초등 5학년들이니 대화도 통하고 도서관 도우미 역할까지 해주니 무척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친구들과 점심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으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음식을 주문 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서는 절대로 양보가 없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빨리 나오는 음식으로 통일해서 주문해도 되련마는 이 순간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한번은 아이들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주문했다가 뒤따라오는 원망과 눈 흘김에 진땀을 빼었다.

 먹는다는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 모두에게 주어진 신성한 권리이다. 한두 번의 의식이 아닌 날마다 반복되는, 어쩌면 생명과도 직결되는 엄숙한 의식인 것이다. 더불어 먹는 일은 즐거움이다. 유기농 음식이든 인스턴트식품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서 먹는 즐거움은 그 누구도 강요 하거나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신성한 권리와 즐거움을 동시에 빼앗긴 우리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보면 먹는 문제의 소중함, 아니 위대함을 알게 된다. 먹는 문제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할 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요즘 우리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감자밭, 아니타 로벨>을 읽어주면서 요즘의 세태를 깊이 생각해 본다.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 두 나라 사이에 있는 작은 계곡에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는 아주머니와 두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감자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롭던 그들에게도 전쟁의 그림자는 다가왔고 두 아들은 전쟁터로 나간다. 점점 치열해지는 전쟁 중에 두 나라에는 먹을 것이 남지 않게 된다. 두 아들은 각각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적군이 되어 마주친 두 형제는 또 다시 싸움을 벌여 집은 부서지고 감자 밭은 함부로 짓밟혔다.

폐허가 된 집과 쓰러진 어머니를 보고 비로소 두 아들은 울부짖는다. 그걸 본 모든 병사들은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흐느껴 울게 되고 어머니는 그들 모두에게 남은 감자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 때 그림책의 장면은 검은 색 폐허의 색채에서 파란색 붉은색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감자밭으로 옮겨지며 희망의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먹는 것의 중요성을 우습게보던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느라 애쓰는 것 같지만 해결책은 너무도 명료하고 간단하지 않는가. 먹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주지 말고 먹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되찾아 주면 되는 것이다. 먹을 것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외교적인 문제와 나라 경제 운운하는 논리로 설명하려 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다. 전쟁터에서도 어머니의 감자밭은 위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감자밭을 가꾸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들에게 행복한 화답을 주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날 도새기 추렴 할 때의 정감 어렸던 모습과 제삿날 이웃마다 떡을 돌려먹던 기억들... 먹는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결국은 공동체를 살리는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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