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악당의 반란, 책을 읽기 시작하다 (제민일보. 08년03월28일)



도서관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봄의 화사함을 느껴본다. 새 학기를 맞은 설렘으로 쫑알대는 아이들에게 같이 끼워 달라고 떼를 쓰고 싶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다.


우리 도서관에 최고의 악당(?)이 있다. 일곱 살 때부터 도서관을 혼자서 기웃거리더니 이제는 완전히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 이 녀석은 도서관은 조용히 책만 읽는 곳이라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보란 듯이 깨며 도서관 문을 씩씩하게 열고 들어온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특유의 미소를 흘리면서 도서관 순례를 시작한다. 어차피 책에는 관심이 없다. 재미있는 장난거리를 찾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혼자만 괜히 바쁘다. 이것도 싫증이 나면 책 읽는 형 누나들 틈에 슬쩍 끼어들어 슬슬 시비를 걸어보다 상대를 안 해주면 죄 없는 유아용 의자들을 깡그리 모아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발한 방법을 동원시켜 특제의자로 변신시켜 놓고 넉살 좋게 앉아서 논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이제 이 녀석도 1학년이 되었다. 요 며칠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1차 단계인 도서관 순례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자연스런 행동을 모두 생략 한 채 슬그머니 책을 꺼내더니 구석진 자리에 엎드려서 낄낄대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매일. 이 녀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짠해오는 느낌과 1년 가까이 신경전을 펼쳤던 이 아이에게 미안함마저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고집해오는 도서관 운영의 신념을 이 녀석을 통해 재차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 책은 그저 재미가 없는 낡은 장난감정도의 개념이다. 어른들의 욕심에서 책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떠넘기고 읽으라고 강요하면 당연히 아이들은 책과 멀어 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을 어른들은 잘 하지 못한다. 아이들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책 속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체면 불구하고 배를 잡고 뒤집어지는 모습. 낄낄대며 콧물을 흘리다 슬쩍 책장에 닦는 모습. 이런 모습을 어른들이 되찾는다면, 옆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은 그걸 보면서 책에 호기심을 느끼고 좋아하는 게임만큼 책도 재밌는 거라고 슬며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우리 도서관 악당처럼 아이들의 마음은 똑같은 것 같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머지앉아 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은 인내를 가지고 옆에서 지켜봐 주는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재밌게 책을 읽는 일을 지금 이 순간부터 하루 10분씩이라도 시작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임기수·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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