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기다리기           (제민일보. 08년7월15일)


방학이 다가온다.

"선생님! 이 책 있어요?"

종이 한 장을 들고 뛰어오는 엄마가 보이면 '음, 학교에서 권장도서목록이 나왔구나.' 하고 짐작한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부모님 대부분은 아이들이 읽을 책을 골라 간다. 자기아이에게 맞는 책과 재미있는 책을 고를 줄 아는 부모님들을 만날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사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며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들 스스로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이들에게 부모가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게 좋을까?

스스로 자기가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은 아이가 자기에게 맞는 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아이들 스스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면서 책을 고를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선택권은 너무 흥미위주로만 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부모로써 여러 가지 걱정이 보태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적당히 중간에서 타협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아이가 빌리고 싶은 책 두 권, 부모님이 권하고 싶은 책 두 권으로 정해두는 건 어떨까? 어려움이 있다면 사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라고 보일지 모르지만 그네들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잠재 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능력들을 어른들의 잣대로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우리 도서관에 날마다 오는 아이가 있다. 부모님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도서관 에 있는 시간이 제법 긴 편이다. 처음에는 만화책을 들춰보거나 그냥 빈둥거릴 때가 많더니 어느 때부턴가 자기 스스로 책을 고른 다음, 한쪽 구석진 곳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다. "낄낄"대며 때론 진지한 표정으로 책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그 아이의 표정으로, 행동으로 읽을 수 있는 변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잘 알고 있으면서 가장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믿고 기다리기'가 아닐까?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기다려 주기엔 진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고르며 실패하고 성공할 기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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