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희망은 준비되어야 한다. 
              

                                                                                        2009년 02월 10일 (화)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학교가 끝나는 시간, 추운바람을 이겨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아랫목에 묻어둔 반들반들한 삶은 달걀 하나를 형들 몰래 건네 주셨다. 막내아들에게만 특별히 주시던 어머니 사랑의 덤이었다.


겨울이 되면 암탉은 부뚜막에 알을 낳았다. 부뚜막 구석진 자리에 지푸라기가 깔리고 보금자리가 마련되면 암탉은 늘 그곳에 알을 품었다. 암탉이 알을 낳는 동안 어머니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부엌일을 하면서 중얼 거리곤 하셨다. "느가 거기에 알을 낳는 것도 느 팔자, 나가 알을 우리 새끼들한테 멕이는 것도 나 팔자여"지금 생각하면 암탉이 소중하게 낳은 알을 날름 먹어버리는 어머니의 미안한 심정을 팔자타령으로 덜어보려 하셨던 같다. 그 후 신식부엌으로 개량 되고 더 이상 우리 집에서 암탉을 기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어머니의 알을 먹으면서 자라났다. 아니 암탉이 그곳에다 낳아 놓은 알을 먹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고향집에 가면 부뚜막이 있었던 자리, 찌푸라기가 깔렸음직한 그 자리에 눈길이 가며 마음이 쏠린다. 따뜻하고 포근하였을 그 자리. 바로 그곳은 내 유년의 부화장인 셈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는 암탉처럼 포근한 부뚜막의 한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위한 알을 낳고 있다.


30평 남짓한 이 작은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삶은 달걀을 건네주는 마음으로 책을 한권 권해 준다. 찬바람을 이기고 잘 왔다고 다독여 준다. 오늘 여기에 온 아이들이 이 작은 도서관을 마음속에 오래 오래 품게 된다면 녀석들에게 이곳은 내 어린 시절의 부뚜막 같은 유년의 부화장이 되겠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살지고 영양가 넘치는 달걀을 생각 하겠지. 아니 한권 책을 생각 하겠지.


전국적으로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산파 역할을 했던 도서관 몇 곳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지자체의 지원 없이 어렵게 공간을 이끌어 오다 건물 임대료, 운영비의 조달 등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우리 도서관도 다르지 않다. 관리비 인상, 공간을 비워달라는 압력 등의 문제로 희망이 넘쳐야 할 새해부터 마음이 무겁다.


당장 겉으로 절감을 하고 예산을 줄이는 곳으로 도서관이나 문화 공간이 지적된다면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느 곳을 유년의 부화장으로 기억할 것인가? 매일 먹는 음식만이 보약은 아니다. 마음이 쉴 곳.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을 낳기 때문이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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