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8일 (화)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14년 만에 집이 쑥대밭이 되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자리를 지켜오던 살림살이들이 밖으로 추방당하고 모든 것들이 재배치되는 난리를 치렀다. 봄도 아니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 늦가을에 웬 부산을 떠느냐고 궁금해 할 것이다.

이유는 바로 두 아들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죽순처럼 커가는 큰 아들과 위쪽보다는 옆으로만 퍼져나가는 작은 아들에 비례해서 집은 너무 작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기 방이 따로 없어도 지금까지 불평 한마디 없는 두 녀석이 고맙기도 하지만 이제 곧 사춘기로 접어들 이들에게 자기들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현실이 아빠로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며칠 동안의 난리 통을 겪고 나서 드디어 비록 작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들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들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에 대해 부쩍 관심을 가져본다. 초등학생 때는 우리도서관에 매일같이 책을 보러 오던 녀석들이 중학생이 되자마자 무슨 큰 벼슬자리라도 생긴 것처럼 도서관 발길을 뚝 끊어버린다. 길거리에서라도 아는 녀석을 만나면 반가움에 왜 도서관에 안 오느냐며 내가 보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공부 때문에 바빠요. 학원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허망함과 쓸쓸함을 느낀다.

지금 아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유아와 초등학년 시기에는 강요든 아니든 넘쳐나는 책과 부모들의 독서환경 배려 덕택에 진정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끼던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는 것에 비례하여 즐기는 책읽기 대신 독후감과 시험, 논술에 대비하는 의무감으로 가득 찬 책읽기, 보여주기 위한 책읽기로 변해간다. 이 모든 과정들을 아이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교육 정책을 주도해오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너무 큰 것 같다.

몸은 점점 성숙해오고 지적능력도 점차 커지는 시기인데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고민을 하지만 정작 이런 것들을 해결 할 기회나 공간이 없다. 이제 어린이들이 누리는 혜택을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돌려주어야 하고, 이들이 마음 편히 찾아 올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주어 할 때인 것 같다. 딱딱한 칸막이로 막힌 일반 공공도서관의 열람실을 벗어나 탁 트인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고 지식습득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와 진정한 토론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 바로 청소년도서관이 필요한 때이다.

더 이상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광장>이 독후감과 수능을 위한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책읽기가 아닌, 이 책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을 가진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게 말이다.
                                  
                                                                            임기수(설문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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