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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푹빠진날

아버지와 딸

[책읽는 경향] 제주에서- ‘아버지와 딸’

 

유채꽃 향기가 온 섬을 물들일 때 아버지는 그 꽃 속에 있었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한라산 중턱을 물들일 때도 아버지는 집 대신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는 벌을 키워 꿀을 따내는 양봉업을 하셨다. 자식보다 꿀벌들을 더 생각하는 듯했고, 집보다 한라산 야생의 들판을 더 편안히 여기시는 듯했다.

 

 

 

그런데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 꿀벌가족들은 따뜻한 우리집 앞마당으로 내려왔다. 1년 중 가장 긴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아버지는 늘 무표정하고 말이 없으셨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나는 늘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다.

지금 나는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꿀벌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아주 멀리까지 마중갔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표현이 서툰 아버지는 최상품 꿀이 가득 들어있는 병을 살며시 내미는 것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신했던 것 같다. 더불어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자기 곁에 항상 있는 꿀벌들에게 대신하며 살았음을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딸’(미카엘 듀독 드 빗 글·그림, 새터)을 읽으며 나는 가슴 시리게 그리운 사람,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책은 단편 애니메이션 ‘father and daughter’를 감독 자신이 그림책으로 만든 것이다. 절제된 문장 속에서 어릴 적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평생 그리움을 가슴 속에 묻고 사는 딸의 마음을 기묘하게 쓸쓸한 느낌과 아름다운 배경 그림으로 표현했다. 쇠붙이 같은 현대사회에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한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