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경향] 제주에서- ‘아버지와 딸’

 

유채꽃 향기가 온 섬을 물들일 때 아버지는 그 꽃 속에 있었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한라산 중턱을 물들일 때도 아버지는 집 대신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는 벌을 키워 꿀을 따내는 양봉업을 하셨다. 자식보다 꿀벌들을 더 생각하는 듯했고, 집보다 한라산 야생의 들판을 더 편안히 여기시는 듯했다.

 

 

 

그런데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 꿀벌가족들은 따뜻한 우리집 앞마당으로 내려왔다. 1년 중 가장 긴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아버지는 늘 무표정하고 말이 없으셨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나는 늘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다.

지금 나는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꿀벌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아주 멀리까지 마중갔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표현이 서툰 아버지는 최상품 꿀이 가득 들어있는 병을 살며시 내미는 것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신했던 것 같다. 더불어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자기 곁에 항상 있는 꿀벌들에게 대신하며 살았음을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딸’(미카엘 듀독 드 빗 글·그림, 새터)을 읽으며 나는 가슴 시리게 그리운 사람,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책은 단편 애니메이션 ‘father and daughter’를 감독 자신이 그림책으로 만든 것이다. 절제된 문장 속에서 어릴 적 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평생 그리움을 가슴 속에 묻고 사는 딸의 마음을 기묘하게 쓸쓸한 느낌과 아름다운 배경 그림으로 표현했다. 쇠붙이 같은 현대사회에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한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Posted by 설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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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SUS 2009.04.17 16:35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아버지와 딸을 검색하다가 이 글을 보고
    반가운 김에 트랙백을 하나 남기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