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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어린이들이 내 집 같은 도서관
설문대어린이도서관
데스크승인 2011.03.12   홍성배 | andhong@jejunews.com  


                                          ▲ 설문대어린이도서관 임기수 관장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자, 아이들은 줄을 타고 올라갔지만 호랑이는 떨어져 죽었잖아.”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남자 어른이 사투리를 섞어가며 큰 소리로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그 옆에 어떤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팔에 매달려

이야기를 듣는 등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그리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제주시 연동 270-5번지.

연동 노인복지회관 2층에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담한 작은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10년 넘게 어린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있는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이다.

그리고 엄마들이 책을 읽어준다는 기자의 고정 관념을 깨버린 이는 2004년부터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임기수 관장이었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1998년 개관한 이곳은 제주지역 첫 민간 어린이도서관이다.

 당시 허순영 관장(현재 전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이 중심이 된 ‘제주동화읽는어른모임’을 토대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도서관은 2년 만에 지상으로 나오는데 성공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여러 도움을 얻어 2007년에야 가능했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설문대라는 명칭에서 보듯 설문대할망의 설화와 연관이 깊다.

 할머니가 손자.손녀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하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때문에 이곳은 여느 도서관과 달리 자유분방하다.

책 읽는 소리가 150㎡도 안되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가 하면 아이들의 소리로 이곳이 도서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무질서 해 보이는 속에 자기들 스스로의 질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13년 세월 동안 설문대는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금도 ‘책과 문화가 함께 하는 도서관’을 목표로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문화강좌가 열리는데, 구제주에서도 이곳을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두린 아이 속닥속닥’이라는 유아 그림책 교실이 열려 책도 보고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목요일에는 ‘여근 아이 손 자파리’라는 학교 밖 글쓰기 교실이 진행된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득 채워나갈 수 있도록 금.토요일에는 과학책 읽는 아이들의 모임인 ‘책 읽는 오후 6시’가 진행되고, 수요일에는 ‘역사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임’, 목요일에는 오후 6시에는 그냥 재미있게 책 읽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주말에는 수학귀신과 한바탕 신나게 노는 ‘주말 책 놀이터’가 열린다.

 이들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학부모 독서모임인 ‘책 읽는 여우들’이 있다.

 동화 ‘책 먹는 여우’에서 이름을 따온 이들은 매주 화요일 도서관에 모여 독서토론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살찌우는 한편 어린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현장으로 뛰어든다.

 2005년부터 시작한 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는 이웃과 책을 나누는 대표적인 행사이다.

 이들은 문화소외지역을 선정해 1년간 매주 금요일 오전 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벌인다.

 지난해는 사업 첫해 다녀왔던 장전초 병설유치원을 찾아 아이들과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강영미씨는 “애들이 얼마나 반겨주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는 게 보람이고 행복이었다”고 전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설문대의 책 축제도 유명하다.

 조천읍 신촌리에서 마을과 연계해 남생이못에서 책 축제를 열었는가 하면 2009년에는 인근의 삼무공원 기차 속에서 책과 함께 가을의 추억을 쌓기도 했다.

 독서교실도 특이하다.

 임 관장은 “여름의 경우 아이들은 1주일간 책만 읽고 교사들이 관찰일기를 작성하고, 겨울에는 1주일간 동영상 만들기, 인형극 등 새로운 해석을 통해 놀기만 한다”며 웃었다.

 ▲설문대의 저력과 꿈=설문대는 민간 도서관이기 때문에 뜻있는 이들의 도움과 노력을 자양분 삼아 어린이들이 오로지 책과 함께 행복을 꿈꾸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든 이가 주인이어서 통제도 없다.

 도서관 운영과 유지를 지역사회 민간인사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책임진다.

 250여 명의 후원인들이 CMS 계좌이체를 통해 매달 3000원~1만씩 힘을 보태고 있고, ‘책 읽는 여우들’을 비롯해 자기 일처럼 밤 새워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설문대를 받치고 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도서관에 들렀다가 도서관이 편하고 좋아서 애용하게 되고 결국은 이른바 ‘팬’이 되는 것이다.

 82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설문대는 인심도 후하다.

 가족당 1주일에 6권을 빌려주고 1주일간 연기도 해주지만, 연체해도 찾아오면 그냥 또 빌려준다. 동네 구멍가게 같은 인심을 느낄 수 있다.

 설문대 사람들은 비록 비좁은 도서관에 월 40만원의 임대료 등 빡빡하고 어려운 살림에도 긍지가 남다르다.

 이들은 아이디어만 나오며 곧바로 실행으로 옮긴다.

 또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다른 지역의 전시와 공연장을 찾아 발품을 파는데 열심이다.

 그러한 노력과 시도는 곧바로 현장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의 프로그램은 도내에서 보다 밖에서 더 알려져 있다.

 장서 수로는 턱없이 뒤처지지만 열정과 프로그램은 누구 못지 않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임기수 관장은 “도서관은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곳을 떠나 재미있는 곳이어야 한다”며 “억지로 책을 강요하지 말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스스로 책을 좋아하게 뒷받침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문대는 장차 어린이도서관을 넘어 청소년까지 아우를 수 있는 도서관을 꿈꾸고 있다.

 물론 돈도 안되는 민간도서관으로 난제가 겹겹이 앞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가꾸는 이들의 열정은 새로운 도전이 꿈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자신의 일처럼 밤을 밝히는 자원봉사자들과 돈도 안 되는 도서관에서 ‘왕언니’로 당당하게 남아있는 임 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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