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어린이도서관' 테마기획에 설문대가 선정되어 1면에 크게 나왔네요~~


[테마기획 | 아주 특별한 '어린이 도서관'] ⑤ 제주 설문대 어린이도서관 <끝>


"숲 속서 책·자연과 함께 놀아요"
제주 전설 듣고, 즉흥 동화 만들고… '체험 통한 책 읽기' 문화 강좌 인기

제주=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70-5번지. 잔잔한 제주 바닷바람이 숲 속에 스며드는 이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 창밖엔 자그마한 오솔길이 펼쳐지고 여기저기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를 감싸는 곳이다. 자연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숲 속 도서관,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이다. 책은 기본, 예쁜 자연까지 덤으로 만날 수 있는 이곳을 지난 14일 찾았다.


◆'할머니 품처럼 따뜻한 도서관' 목표로 1998년 개관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은 제주 삼무공원 동쪽,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회색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삼무공원은 우리나라에 딱 하나 있는 증기기관차(‘미카형 증기기관차 304호’)가 있는 곳이어서 초행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1998년 문을 연 이곳은 당시 허순영 관장(현재 전남 순천 기적의도서관장)이 만든 어린이 책 토론 모임에서 시작됐다. 모임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66㎡(약 20평) 지하 단칸방을 하나 얻어 도서관으로 꾸민 것. 책 1200권이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에서 ‘제주 첫 민간 어린이도서관’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4년부터 설문대 어린이도서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임기수 관장은 “공간은 비좁은데 방문객은 갈수록 많아져 2000년 좀 더 넓은 지금 위치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설문대란 명칭은 제주 전설 ‘설문대 할망(할머니의 제주 사투리)’ 설화〈키워드 참조〉에서 따왔다. ‘손자·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도서관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은 휴관일을 제외한 매일 문화강좌가 열린다. 이날은 글쓰기와 동화책을 보고 느낀 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수업이 펼쳐졌다. / 제주=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의 면적은 약 132㎡(40평)이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곳곳에 7200권의 책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등록 회원은 약 2100명. 몇가지 등록 절차만 밟으면 바로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으며 1인당 최대 여섯 권의 책을 빌려준다. 보통 도서관의 대출 권수가 세 권인 것에 비하면 인심이 꽤 후한 편이다.


임 관장은 “규정상 한 번 빌려간 책은 7일 이내에 반납해야 하지만 전화를 하면 기한을 2~3주까지 연장해준다”고 말했다. “우리 도서관이 위치한 삼무공원의 ‘삼무(三無)’가 ‘제주도엔 거지·대문·도둑 등 세 가지가 없다’ 는 뜻이에요. 특히 우리 도서관엔 ‘책 도둑’ 이 없거든요. 그 덕분에 회원들에게 이런 배려를 할 수 있죠.”(웃음)


이곳을 찾은 김서연 씨(47세)는 “예전에 아이 숙제에 꼭 필요한 책이 있었는데 휴관일인 일요일에도 직원들이 출근해 책을 빌려주더라”며 “그때 받은 감동이 인상적이어서 10년째 꾸준히 들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도서관이 마련한 책잔치 ‘책 속의 그녀석' 때 완성된 재활용 의자(1)와 로봇 모양 책꽂이(2), 동물 모형 책꽂이(3)의 모습. / 제주=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어린이가 좋아하는 동화나 그림책 비중이 큰 것도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의 특징 중 하나다. 도서관에서 만난 오성현 군(제주교대부설초 1년)은 “큰 도서관은 책 찾기가 힘든데 이곳엔 내가 좋아하는 모험 책이 가득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책 여우 선생님'제도 아래 다양한 문화강좌 기획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은 ‘책과 문화가 함께하는 도서관’ 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휴관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각종 문화 강좌가 열리는 것만 봐도 이곳의 특성이 드러난다. 모든 강좌가 ‘체험’ 을 통한 책 읽기 방식을 지도하고 있다는 게 특징.


임 관장은 “제주의 전설을 들려주고 곧장 해당 전설을 품고 있는 현장으로 이동해 강의가 이뤄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가끔은 특정 장소에 가서 아이들끼리 즉흥 동화를 만들어보게 하기도 합니다. 짝을 지어 얘길 만들어본 후 그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게 하면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사진 동화’가 탄생하는 거죠.”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의 한 해를 정리한 사진 앨범. 도서관 직원들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 이용객의 모습을 앨범에 담아 간직해오고 있다. / 제주=남정탁 기자 jungtak2@chosun.com

다양한 강좌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은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에서 활동 중인 열 명의 ‘책 여우 선생님’이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좀 더 맛있게 책을 먹을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름은 동화 ‘책 먹는 여우’ 에서 따왔다. 책 여우 선생님들은 매주 화요일 회의를 갖고 어린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들의 활약 덕분일까? 최근 설문대 어린이도서관 주변엔 제법 큰 공공도서관이 들어섰지만 이용객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고 있는 김승현 양(제주 신광초 1년)은 “화요일마다 도서관에 오는데 무척 재밌다”며 “오늘은 늦을까 봐 택시를 타고 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도서관이 매년 가을 열고 있는 책잔치 ‘책 속의 그 녀석’ 은 이미 동네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임기수 관장과 책 여우 선생님들은 이날 하루를 위해 꼬박 두 달 동안 매달려 준비할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책 잔치 '책 속의 그 녀석'에서 책 여우 선생님이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 설문대 어린이도서관 제공

“저희는 결코 어린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책과 함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죠. 어릴 때부터 엄마 등에 업혀 도서관을 찾던 아이들은 도서관과 친해지며 저절로 인성을 키울 수 있거든요. 저희가 어린이 이용객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역시 그 때문이고요. 어린이 여러분, 제주에 오면 설문대 어린이 도서관의 문을 꼭 한 번 두드려주세요!”


☞ 설문대 할망 설화


설문대 할망은 제주도의 지형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 여신이다. 지역에 따라 줄거리가 조금씩 다르고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창조신으로 알려져 있다. 몸집이 엄청나게 커 한라산 백록담을 베개 삼아 누웠고 다리를 뻗으면 성산 일출봉과 우도 사이까지 닿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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