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에 연재되는 유럽의 책마을, 도서관, 동화마을 기사들을 정리 해 놓았습니다.



뚜벅뚜벅, 제주 '헤이온와이'를 꿈꾸다
제주 촌놈의 유럽 책 여행기 ① 유럽 책마을-영국 헤이온와이
2011 년 04 월 22 일 금16:09:43 제민일보


읽고,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독서의 유용함은 몇 번을 강조해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독서교육이며 책 활용 프로그램도 넘친다. 그래도 부족하다. 서점을 찾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운이 좋아야 동네 가까이 도서관을 찾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책 문화'를 만들기 어렵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훌쩍 유럽으로 떠났던 임기수 제주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의 한달여 행적을 지면을 통해 따라가 본다./편집자 주

기회는 너무 빨리 다가왔다. 책을 끔찍이 사랑하는 부부의 책 여행에 '눈치없이' 끼여 30여 일간 유럽의 책 마을과 도서관, 동화마을을 눈으로 확인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약간의 뻔뻔스러움은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제주 책 마을 만들기'의 꿈으로 상쇄됐다. '혹시'하는 노파심에 서둘러 가방을 쌌다. '이제 시작이다'. 그런 생각을 가슴에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찾으려는 목적이 분명했던 까닭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과 관련한 모든 것이 더 쉽게 만나졌는지도 모른다.

   
 
  ▲ 헤이온와이 책마을 안내지도  
 

# 산간 오지마을로 걸어 들어가면

유럽 책 마을의 공통점은 시골 산간 오지마을에 있다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하루 몇 번 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타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주머니를 털어 비싼 택시 타기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마을에 들어서면 몇 백년은 됨직한 건축물에 책방들이 누구든 아낌없이 반긴다.

책방들 사이에는 예술가들의 공방이 있고 계절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 축제를 즐긴다. 농가의 집 부엌에도 책, 현관에도 책, 집 담장마다에도 책 바구니가 놓여 있다.

마을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퀴퀴한 책 냄새에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지는 살아있는 책들의 마을, 바로 이런 곳이 유럽의 책마을이다.

   
 
  ▲ 헤이온와이 책마을 창시자 리차드부스의 책방  
 

# '헤이온와이' 그 땅에 서다

유럽의 책 마을.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영국의 괴팍한 책벌레 리차드 부스가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후 1962년에 '책 읽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웨일즈 지역 헤이마을에 처음으로 책방을 연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1971년 12세기 초에 지어진 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헤이캐슬'을 사들여 성 전체를 책방으로 꾸미고 1977년 "헤이온와이는 대영제국의 일부분이다"며 독립왕국을 선포한다. 그리고 스스로 '서적왕' 칭하고 왕위즉위식까지 거행한다.

영국의 최고 명문대를 졸업한 아들이 벌이는 '허무맹랑'한 일을 망연자실 지켜봐야 했던 부모의 한숨소리에 모두가 미친 짓이라 '정신 나간 놈' 이라 비웃었던 책 마을 사업이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진짜 '책 왕국'이나 다름없다.

1500여명의 주민이 40여개의 책방을 운영하고 마을 전체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책 마니아들을 위한 민박집, 식당, 갤러리와 공방으로 움직인다. 말 그대로 세계 최초의 책 마을이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책 마을이 됐다.

   
 
  ▲ 헤이캐슬앞 전경-마당에 있는 야외 책장이 이색  
 

#책으로 마을을 살리다

런던 페딩튼역에서 기차로 3시간, 하루에 3번밖에 안 다니는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1시간 이상 걸려서 도착한, 책과 연관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쯤은 오고 싶어하는 헤이온와이 책 마을.

제주도 촌놈이 이 책 마을에 두발로 서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떨림이 강렬했던 첫 인상을 대신했다.

'헤이 캐슬'을 중심으로 발길 닿는데 마다 늘어서 있는 헌 책방들은 무슨 조화를 부리듯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틀 동안 이 마을에서 먹고 자면서 곰팡이 냄새를 풍기는 헌책들의 신비로운 조화를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이 책들의 신비로운 조화를 제주의 어느 농촌마을에서 되살려 보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 헤이 캐슬을 개조해서 만든 책방 내부  
 
   
 
  ▲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이런 '헤이온와이' 책 마을의 성공을 모델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쇠락해 가는 마을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유럽의 책마을 만들기로 연결됐다. 그 결과 유럽전역에 21개의 책 마을이 생겨났고 마을마다의 특성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감소하고 젊은이들이 남아있지 않은 유럽의 시골마을은 각 나라마다 현실적인 고민거리였고 따라서 어떤 곳은 한 사람의 의지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 마을을 만들어 낸 곳도 있고, 또 어떤 곳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정책적으로 책 마을을 조성한 곳도 있다. 제주 역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아이템이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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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깊은 지성으로 마을을 채우다
제주 촌놈의 유럽 책 여행기 ② 몬테레지오 책마을·앙비엘레 책마을
2011 년 04 월 29 일 금14:35:38 제민일보
   
 
  ▲ 이탈리아 몬테레지오 책마을 골목길  
 
작은 마을들의 특별한 변신…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문화유산 탈바꿈
책 축제 통해 지명도 높이거나 지속적인 소통 통해 터 잡고 문화 키워내


#마을 전체서 느껴지는 책 냄새…몬테레지오 책마을

   
 
  ▲ 마을공터에 놓여있는 책수레(이탈리아 몬테레지오)  
 
책 마을 중 가장 먼저 찾아갔던 곳은 이탈리아의 '몬테레지오 책마을'이다.

이 마을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산간 오지에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대략 230㎞거리의 뮬라쬬 지역에 있는 몬테레지오 책마을. 마을입구에 도달할 때 까지는 강원도 산길보다 더한 아찔한 길을 통과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곳에 책 마을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과거 이 마을 사람들은 지형적 영향으로 특별한 생산물이 없이 가난한 생활을 이어왔다. 책이 왕실과 귀족,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일반인들에게 책 읽는 것을 금했던 중세시대 이 마을 사람들은 먹고 살기위해 책을 수레에 싣고, 책 바구니를 어깨에 맨 채 이 마을 저 마을로 몰래 책을 팔러 다녔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하고 지식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해 냈다.

   
 
  ▲ 마을 입구에 서있는 책마을 상징 부조물  
 
마을 공터에는 이 마을을 상징하는 책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책을 들고 있는 부조물이 서있다.

다른 지역 책 마을 같이 골목 곳곳에 책방이 있는 대신 마을 전체가 하나의 책방처럼 느껴진다. 작은 마을이어서 더 그렇다. 책 마을이라고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좁다란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 그 안에 파묻힌다. 불과 한 걸음 발을 떼는 것만으로 책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박물관 안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을 중심에 높다란 종탑이 있는 교회가 있고 그 내부에는 이 마을 후손들 중 유럽 전 지역에 정착해 성공한 서점주인, 출판업자들의 모습들이 걸려있다.

   
 
  ▲ 마을 골목길에서 책을 팔고있는 할머니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몬테레지오 후손들이 각 도시로 나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점과 출판사를 열었다고 한다. 이 마을이 바로 서점과 출판업계의 산실이 된 셈이다.

우리 일행을 맞아준 선술집 가게 주인은 매해 여름 책축제 기간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마을이 들썩거린다고 자랑한다. 은근히 부러워진다.

마을 공터 한가운데에는 책 바구니를 메고 서있는 부조물과 그 옛날 책을 싣고 마을마다 돌아 다녔던 책수레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옛날의 향수를 오늘로 옮기고 있다.

   
 
  ▲ 앙비엘레 책마을 안내지도  
 
   
 
  ▲ 앙비엘 책마을 풍경  
 
# 문화 자존심 우뚝…프랑스 앙비엘레 책마을


발을 옮겨 프랑스로 향했다.

우리 일행은 스위스의 하이디마을을 거쳐 제네바에서 승용차로 4시간정도 달려 프랑스 남부지방에 위치한 앙비엘레 책 마을을 찾았다. 스위스에서부터 동행해준 UN인권위원회 K팀장과 앙트완느 프랑스신부님 덕분에 프랑스 책 마을 일정은 마을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앙비엘레 책마을 책방 간판  
 
앙비엘레 책 마을은 조성 된지 5년 밖에 안 된 유럽 책 마을 중에는 후발주자이다. 그래서 책방은 아직 4곳 밖에 없고 한눈에 봐도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앙비엘레'는 인근에 로안느(Roanne)라는 대도시를 끼고 있다. 이곳은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행동가·실천가인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가 노동자로 일했던 공업지대이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지역이라고 동행했던 앙트완느 신부님이 귀띔해 준다.

문학과 노동운동의 역사가 깊은 곳이고 파리 지성인들이 은퇴 후 제2의 삶을 찾아 많이 내려오는 지역이기에 아마도 로안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앙비엘레에 책 마을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 앙비엘레 책마을협의회대표인 장마크 디디용씨
 
 
앙비엘레 책마을협의회 대표이고 '지혜의 꽃'이라는 철학적인 이름의 서점을 운영하는 장마크 디디용씨 역시 파리에서 일하다 은퇴 후 이 곳에 터를 잡았다. 2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세월이 갈수록 책방과 책방을 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프랑스의 국가적 망신이라고 흥분한다. 67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디디용씨의 말에 따르면 '슈퍼에서 책을 파는 행위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며 '홍당무와 양파와 감자 사이에 책을 끼워 넣어 사가는 요즘의 책 판매 행태는 대단히 몰지각한 행위'다.

그는 "진정한 책방주인이라면 책에 대해 조언할 수 있어야 하고,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을 알아 그에 맞는 책을 골라줄 수 있어야 하며 정말로 책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며 "요즘은 이런 책방주인이 차츰 사라져 찾아보기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같이 토론하고 책을 매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그 즐거움 때문에 이 책  마을을 이끌어 나간다는 천진난만한 표정 속에서 남 같지 않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앙�! 澍ㅇ� 책마을의 시작은 책을 좋아하는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시작했다. 이 마을 중앙에 있는 15세기 건축물과 근처마을에 유서 깊은 마을이 있고 그 중 한마을은 예술가들이 정착해 사는 곳이 있는 관계로 이 마을을 선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책방을 만들겠다는 사람 서넛이 마을에 들어오자 주민들은 차라리 정육점이나 할 것이지 이런 오지 마을에 무슨 서점이냐 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포기없이 꾸준히 주민들과 어울리고 아이들이 책방에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마을의 문화유산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 제주에서 벌이고 있는 마을 살리기 운동과 예술인 마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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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운'의 잠재력을 가장 큰 무기로
제주 촌놈의 유럽 책 여행기 ③ 유럽 책마을-프랑스 몽톨리외 그리고
2011 년 05 월 13 일 금15:30:19 제민일보
   
 
  ▲ 몽톨리외 책마을 전경  
 
낡은 집이나 폐가로 책방 조성, 적극적 홍보·지원으로 외부인 유인 성공
겉모습 치중 아닌 내실 살린 의미 공간으로…제주 책마을에의 희망 품어


# 마을과 사람이 하나로…몽톨리외 책마을

책 마을의 여운은 계속된다. 서둘러 발을 옮겨 찾은 곳은 프랑스 남부 아를르와 아비뇽이 가까이 있는 몽톨리외 책마을이다.

이 책마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을 살리기와 같은 정책적 요구가 맞아 떨어져 성공을 이룬 대표적 책 마을이다.

책 마을이 조성 된 지 20년 정도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셀 브라방이라는 사람이 창업자인데 이웃마을에서 제본소를 운영하던 그는 책과 관련된 직업군을 한데 모아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은 누구나 배워 쉽게 전파했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책마을의 시작이 됐다.

   
 
  ▲ 몽톨리외 책마을 고문을 맡고있는 아브리사 쟈크씨(사진 오른쪽)  
 
미셀 브라방의 뜻에 마을 이장과 군수가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지원한 결과 오늘날 이 마을에는 20여 곳의 책방과 인쇄출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 예술가와 작가의 공방들로 특성화를 이뤘다.

누구도 이 마을의 과거에 소규모 염색, 가죽옷공장들이 있었음을 눈치 채지 못한다. 한 때 마을을 이끌었던 '실세'였으나 하나 둘 문을 닫고 마을을 떠나가면서 정육점, 빵집 같은 '구멍가게'만 남게 되었다. 당연히 집세며 땅값이 떨어졌고 유동인구가 줄어들면서 마을 전체가 가라앉게 됐다. 어떻게든 마을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을이장(참고로 프랑스에서는 이장의 힘이 막강하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에 눈을 돌렸다.

   
 
  ▲ 책방마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오래된 고서들  
 
정책적으로 낡은 집이나 폐가를 매입, 책방으로 개조하여 돈 없이도 책방을 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처음 책방 3곳이 문을 연 후 당장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홍보와 정책적 지원으로 예술가들과 책을 사랑하는 외지인들을 마을로 끌어들였다. 마을에 끌린 이들은 저절로 정착하게 된다. 이런 노력의 결과 유럽지역에서 성공적인 책마을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여든이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청년같은 혈색을 자랑하는 책마을 고문 아브리사 쟈크씨는 인터뷰 내내 마을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였지만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참 자랑을 하다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바로 현지주민들과 정착해 사는 외지인들과의 소통문제이다. 책마을이 형성된지 20년이 지나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융화가 힘들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이 문제는 유럽의 한 시골 책 마을이 문제가 아닌 우리 제주지역 농촌마을에서 펼쳐지고 있는 관 주도의 마을 살리기 운동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 같다.

   
 
  ▲ 몽톨리외 그림책 마을을 소개한 팜플렛  
 
# 근본 없는 화려함보다 은근한 소박함으로


'책 마을'이라는 곳은 대개 옛것을 지키길 원하고, 부수고 새로 짓는 걸 싫어하는 유럽인의 특성상 마을의 골목길과 옛집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조성됐다.

있는 그대로의 마을을 지키며 책마을을 꾸렸기 때문에 유럽시골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책을 사랑하고, 책에 매혹된 이들이 모여 책들의 도시를 만들고 책의 향연을 펼친다. 그것이 바로 책마을의 매력이다.

   
 
  ▲ 휴일날 책매니아들은 책방에 들러 시간을 보낸다.  
 
바로 이런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제주 촌놈이 느끼는 감흥은 남달랐다.

만약 섬땅에서 책마을을 만든다면…. 물어보나 마나 당장 큰 규모의 도서관을 짓는다며 홍보를 해댈 것이며 어디에 유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제주를 흔들 것이다. 다음은 접근성이 있네 없네, 장서가 많네 적네, 관리인력이 어떻네 하며 불편한 소리들이 이어질 터다. 입이 쓰다.

사실 제주의 정서와는 전혀 상관없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박물관과 공원들,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천혜의 경관들을 개발이라는 논리로 외지자본에 헐값으로 팔아넘겨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시멘트를 발라 만든 각종 관광지들이 제주를 뒤덮고 있으니 말이다.

유럽 책마을들의 성공은 지붕이나 울타리 하나 조차도 철저히 보존하고 문화를 지켜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근본이 없는 화려함은 소박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제주다운 것을 발굴하고 보존해 나가는 것이 느리고 보잘 것 없지만 나중 후세들에게는 엄청난 재산 가치로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 가장 제주다운 곳에 책마을을 만들어 자본의 논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그림을 그려본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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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만인에게 평등한 도구"
[제주 촌놈의 유럽 책 여행] 스위스 공공 도서관①
2011 년 05 월 20 일 금16:24:03 제민일보
   
 
  ▲ 어린이 자료실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프라이핸드 공공도서관 건물  
 
역사와 도시와 함께한 도서관의 위용에 저절로 숙연해져
격식 대신 자유로움과 친근함으로 한껏 낮춘 문턱 눈길


유럽 책마을들에 대한 미련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일단 머리와 가슴에 품었으니 그 것만도 다행이다 싶다. 길지 않은 여정에 사실 미련 따위는 금물이다. 서둘러 발을 옮긴다. '책'을 테마로 한 여행에 도서관이 빠질 수 없다. 그렇게 휘적휘적 둘러본 도서관은 오랜 역사와 품격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회색 일색의 우리네 도서관과는 확연히 다르다.

   
 
  ▲ 생갈렌 수도원 도서관 내부  
 
   
 
  ▲ 생갈렌 수도원도서관 필사본  
 
# '영혼의 약국' 중세수도원도서관 '생갈렌'


스위스 하이디 마을에서 발길을 돌려 찾아간 곳은 취리히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조용하고 정갈한 도시 생갈렌이다.

화려한 벽화와 바로크양식으로 한껏 멋을 낸 대성당을 중심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사이좋게 늘어서 있다. 한 눈에 계획적으로 도시가 조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대성당 부속도서관인 생갈렌 도서관 입구 현판에는 '영혼의 약국'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화려한 장식과 금박 입힌 책표지에 압도되어 저절로 숙연해진다.

중세시대 수도원은 교육, 문화의 중심이었고 그중에서 수도원도서관은 고대문헌보존과 필사본제작, 교육적 기능 등 기독교적 세계관을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 중세 도서관들은 수도사들이 신에 헌신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걸쳐 책들을 하나씩 필사하면서 여생을 마치게 된다.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침침한 지하방에서 평생을 필사작업에 매달렸기에 말년에는 거의가 실명에 이른다.

이런 역사를 간직한 책들이기에 생갈렌 도서관은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는 자랑거리고, 우리들에겐 신비감을 준다.

이 도서관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5만권의 장서와 약 1700권의 중세 필사본이 보관되어 있다. 1층은 개방되지만 2층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서가는 자물쇠로 잠겨있어 책을 직접 꺼내 읽을 수는 없지만 도서관을 들러보는 그 자체가 감동이다. 물론 책의 손상을 방지하기위해 사진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 도서관만이 여타 다른 수도원도서관과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약초와 의학에 관련된 서적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 어린 아이들이 모두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고 있다.  
 
   
 
  ▲ 주부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책을 고르고 있다.  
 
# 어린이 기운 '프라이핸드 공공도서관'


생갈렌은 인구 7만 명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주민수가 5만을 넘어서고 있는 제주지역 노형동 인구에 비하면 수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소도시에 공공도서관만 6곳이라 하니 이 나라의 도서관 정책이 어떤지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생갈렌 수도원도서관 옆 서점 주인의 소개로 어린이자료실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프라이핸드 공공도서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들의 크고 화려한 외관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이 도서관의 건물은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했다. 이에 걸맞게 내부로 들어서면 정갈하고 아담한 서가들과 웃으면서 맞아주는 사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용자인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심지어 도서관을 방문한 우리들까지 소개시켜준다. 이런 모습들은 마치 우리나라 작은 도서관에 와 있는 것 같은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스위스는 특이하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스위스 전통 언어�! � 레토로망스어 등 4개 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극성 엄마들 사이에는 자녀들을 스위스로 어학연수 보내면 여러 언어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비싼 생활비를 감수하고 보내려고 한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언어분포도 때문에 스위스정부는 적극적인 언어교육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러한 언어교육정책을 밑바닥에서 실시하는 곳은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공도서관들이다.

   
 
  ▲ 프라이핸드 공공 도서관 사서가 책을 대출 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프라이핸드 공공도서관 역시 다언어문화권에 대한 많은 배려와 그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에 스토리텔링 시간표를 자세히 짜놓고 있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북스타트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안내책자에서부터 부모교육, 아이와 함께 참여하는 교육 모두 다양한 언어로 표기되어 있어서 외국인 거주자들이 참여하는데 전혀 불편을 못 느끼게 하는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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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족적인 그리고 가장 서민적인
[제주 촌놈의 유럽 도서관 기행] 프랑스 도서관
2011 년 06 월 10 일 금18:01:47 제민일보

   
 
  ▲ 미테랑국립도서관 전체 모형물  
 
미테랑 국립도서관 공사기간 7년 12억 유로 등 중후함 살려 전문성 강조
퐁피두 도서관 인종 빈부 격차 대신 누구나를 위한 양질 서비스 승부

#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 미테랑국립도서관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타면 역 이름들부터 특이하다. 우리나라는 지역을 상징하는 이름들 적혀있지만 파리의 지하철역들에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의 이름과 만날 수 잇다.

프랑스 전직 대통령이었던 프랑소와 미테랑 대통령의 이름을 딴 미테랑역. 이 역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엄청난 높이의 책 네 권이 하늘을 맞대고 펼쳐져있다. 프랑스인들이 자랑하는 미테랑 국립 도서관이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인 1988년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국립도서관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무려 7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한 이 '엄청난' 건물은 건축비만 12억 유로(우리 돈으로 약2조원)가 들었다. 어마어마한 예산은 그러나 앞으로 있을 충격의 맛보기에 불과했다.

미테랑 국립 도서관은 책을 펼친 형상의 22층짜리 건물 4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각 건물 사이에는 소나무들이 촘촘하게 어깨를 마주하는 축구장 크기 만한 정원이 있고, 4개 건물을 오갈 수 있는 복도가 있다. 네 개의 건물은 각각 시간, 법률, 문자, 숫자를 지칭하고 인간이 쌓아온 파괴할 수 없는 지식을 상징한다.

   
 
  ▲ 미테랑도서관 입구에서 이용자들 검색한다.  
 
도서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규모에 압도된 채 정신없이 입구에 다다르면 마치 공항처럼 검색대가 막아선다. 일단 소지품검사다. 3.5유로의 입장료도 받는다. 도서관을 무료로 이용하는데 익숙해 있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유럽권 국가의 국립도서관들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폐쇄적인데 반해 이 도서관만큼은 티켓을 끊으면 입장이 가능했다 점이다. 당당히 입장료를 내고 도서관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도서관 유료정책을 놓고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가장 우파적인 대통령(퐁피두)을 기념하는 좌파적인 도서관(퐁피두센터 도서관-사회주의적 복지 모델이니까). 가장 좌파적인 대통령(미테랑)을 기념하는 우파적인 도서관(미테랑국립도서관-접근이 어렵고 유료라는 점)'

   
 
  ▲ 미테랑도서관 열람실 모습. 자연채광 이용.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프랑스인들의 위트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검색과정을 거쳐 도서관으로 들어서면 1000㎡에 이르는 대형로비가 눈에 들어온다.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마치 국제공항 등 대형 공공 건물의 로비를 연상시킬 정도다. 도서관 동관에서 서관으로 이어지는 200여m의 긴 복도는 그대로 갤러리가 된다. 이 공간에는 도서관 문화담당 디렉터가 각 부분의 추천을 받아 수준 높은 작품들만 전시한다.

프랑스인들이 이 도서관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규모적인 측면 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이용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데 있다. 도서, 기술, 홍보 등 55개 직능 분야의 전문가 2000여명이 이용자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서관 지하의 자료 통제실은 최첨단 미테랑 도서관만의 자랑이다. 도서관 직원들이 필요한 자료를 주문하면 도서관 전체를 아우르는 총8㎢의 기차 레일을 따라 자료들을 실어 보내는 최첨단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공상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런 모습은 전체 도서관 규모를 감안하면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테랑국립도서관에는 하루 32, 00여명이 방문하는데 특이하게도 일반 열람석과 함께 박사과정 이수자에 한해서만 개방하는 열람실이 따로 있다. 전문연구인력이 개인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설립 취지에 따른 것이다.

1400만권의 장서와 3000만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고 서가의 총 길이가 400여㎞나 되는 이 도서관의 보석 같은 공간인 연구도서관에서 국가를 견인할 연구자들이 다양한 장서 속에서 깊이 있는 연구와 전문성을 키워나간다.

은은한 빛깔의 귀족적 외양뿐만 아니라 운영방식도 재산과 지식을 가진 상류사회의 귀족적인 도서관이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을 갖고 싶어 한 미테랑과 프랑스 문화적 자부심, 안 좋게 말하자면 오만과 높은 콧대를 대변해 준다.

   
 
  ▲ 퐁피두도서관. 영상·음악 등 모든 자료 만끽할 수 있다.
 
 
# '도서관은 빈민의 대학'... 퐁피두센터 퐁피두도서관

지금까지 말한 귀족적인 도서관과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른 가장 서민적인 도서관이 파리 시내에서 공존한다. 바로 퐁피두도서관이다.

퐁피두센터는 한국 관광객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낯이 익은 관광지이다. 파리를 찾은 방문객이라면 누구든 찾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색적인 건축물과 퐁피두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감동이 끊임없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 어떤 관광안내서에서도 이 도서관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그냥 지나쳐 가는 곳 역시 퐁피두도서관이다.

퐁피두 도서관 입구를 찾으려면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찾아갔던 시간이 오후 4시 정도였는데 그 시간에도 도서관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미테랑 국립 도서관 이용객들과는 판이하게 이 곳에는 그야 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간을 채운다. 인종이며 빈부 같은 사회가 만든 기준은 여기에서 무용지물임을 알 수 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개방하고 있는 공간, 음향실에서는 음악을, 영상실에서는 영상 을, 열람실에서는 공부를, 컴퓨터로는 모든 도서관의 자료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입구에서 간단한 소지품 검사만 받으면 하루 종일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다. 하루 5000여명이 방문하고 2000여개의 열람실이 있는, 하지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책부터 음반, 영화, 비디오, 인터넷까지. 이용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엄청난 규모로 열려 있는 곳으로 매력이 넘쳤다.

그 나라 거주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입구부터 냉정하게 막아서거나 이용을 제한하는 다른 유럽의 국립도서관과 이곳은 신분증 여부나, 인종이나, 거주인 이거나 관광객 이거나 혹은 노숙자 이거나 신분에 관계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이 도서관이야말로 그 순간, 파리에 있는 이라면 누구든 아침부터 와서 하루 종일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그 엄청난 자료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이토록 압도적인 규모를 갖고서도 전혀 위압적이지도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는 도서관. '도서관은 빈민의 대학'이라는 우리에게 표상과도 같은 이 말을 가장 상징적으로 실천하는 도서관이었다. 지친 여정 속에서 가슴 시리는 전율과 행복감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 관장






진정한 영국의 힘과 만나다
[제주 촌놈의 유럽 도서관기행] 마을 작은 도서관①
2011년 07월 15일 (금) 16:26:44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 영국 켄달도서관. 카네기재단에서 지은 도서관.  
 
# 이주민 배려 다문화 서비스


영국은 1850년에 세계 최초로 공공도서관법을 제정하고 이 법에 따라 1852년 맨체스터시에 첫 공공도서관을 건립한 나라다. 이어 미국에서 공공도서관 건립이 잇따랐고 철강왕 카네기가 미국과 영국에서 3000개가 넘는 도서관을 건립함으로써 오늘날 공공도서관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공공도서관의 모태와도 같은 영국이지만 지난 수 십년간 공공도서관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여왔다. 1990년대 영국의 도서관은 긴축재정으로 말미암아 폐관하는 도서관의 수가 급증했고 그 10년 동안 도서대출이 34%나 급감했다고 한다.

영국에서의 도서관기행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도서관보다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도서관들을 찾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모든 관심은 마을 작은 도서관들과 어린이도서관으로 집중되었다.

   
 
  켄달도서관. 카네기를 기리기 위해 만든 현판.  
 
영국의 공공도서관은 각 카운티(우리나라 '도')별로 중앙도서관과 분관시스템으로 연결되어있고 각 타운마다 우리나라 작은 도서관 형태의 마을도서관이 있다.

한 도서관 웹사이트가 밝히고 있는 영국 공공도서관의 기본 정신은 첫째, 어린이가 시민으로서 첫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며 둘째, 소수민족 커뮤니티를 위한 이중언어 서비스. 셋째, 사회빈곤층에 대한 지원서비스, 마지막으로 장애인과 고령자들에 대한 평생학습 서비스다.

우리가 방문했던 영국 공공도서관에서 느낀 감상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특히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유럽의 특성상 이주민에 대한 배려와 다문화 서비스는 확연히 보일 정도로 세심한 것이다. 우리나라 도서관들도 최근에 다문화 서비스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의 다문화 수용정책은 그들을 '한국인화'하는 것에 초점이 모아져 있고 도서관에서도 이에 충실해 우리 문화를 전수하고 우리 언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반면 영국의 다문화 서비스는 이주민이 민족적 자존감을 갖고 그들의 문화를 지켜가면서 영국인으로 영국 사회와 더불어 갈 수 있는 문화의 동등성을 지향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로 비춰졌다.

   
 
  ▲ 켄달도서관 모습. 주민들이 도서 대출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켄달도서관 어린이 열람실 전경  
 
# 개관 시간 탄력 운영


영국 뿐 아니라 유럽의 공공도서관이 우리와 가장 달랐던 점은 개관시간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은 대체로 개관과 휴관시간이 일정하면서 평일 휴관, 공휴일 개관 원칙을 지키는 등 이용자 서비스에 비교적 충실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모든 도서관이 야간개방 서비스를 요구받는 등 인력 확보 요구는 무시된 채 보여지는 서비스에 치중하는 행정편의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공공도서관은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개관시간이 주 20~30시간을 기준으로 신축적으로 운영된다. 요일에 따라서는 하루 23시간만 개방하는 날도 있었고 특히 어린이 열람실의 경우 어린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있는 오전 시간에는 개방하지 않고 오후에만 개방한다든지, 일요일과 공휴일은 원칙적으로 휴관하는 등 우리나라의 고객 중심과 대비되는 유럽 특유의 노동자 중심 업무원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공공도서관 숫자가 부족해서 기존의 도서관이 서비스 강도를 최대로 높일 수밖에 없는 것과는 달리 한 지역 내에서 순환 이용이 가능할 만큼 공공도서관 숫자가 많은 현실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영국 중북부인 컴브리아 지역의 경우 6개 도서관이 분관으로 묶여있는데 그중 우리가 방문했던 켄달 도서관은 1909년 카네기재단에서 지어준 카네기도서관 중 한 곳으로 주민센터와 쇼핑센터가 집중되어 있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영국에는 약 380개의 카네기 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캔달 시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도서관이었고 도서관 일을 하면서 카네기가 설립한 도서관을 꼭보고 싶었던 참이라 그 반가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우리들이 이도서관을 방문한 시간이 12시30분 쯤이었는데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이 부산하게 책을 고르고 대출하기 위해 데스크 앞에 줄서 있어서 사서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문 닫을 시간이 다되었기 때문이란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판을 쳐다보니 우리나라 도서관이용시간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랐다.

   
 
  ▲ 영아들을 위한 책보따리.
 
 
이 켄달도서관은 목요일은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만 개관하고 평일에는 오후 5시에 문을 닫고 토요일에는 오후 1시에 업무를 종료한다. 요일마다 개관시간이 모두 다르니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가기 전에 시간 확인이 필수적이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평일에는 사서들이 돌아가면서 영유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방학 기간에는 14~2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책읽어주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이 도서관을 비롯해 여러 도서관에서 우리는 '책보따리'(story sacks)를 볼 수 있었는데 0~3세 아기들을 위한 책과 인형, 독후활동 교구들을 가방에 패키지로 만들어서 대출하는 시스템이다.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도서는 1인당 10권 내외인데 대출기간이 한 달로 비교적 긴 것이 특징이다. 이외 영국에서 방문했던 모든 도서관이 어린이 열람실만큼의 규모로 영상실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 비디오, 오디오 자료 등 영상자료가 매우 풍부했고 1~2파운드 내에서 유료로 대출할 수 있는데 영상자료 대출률이 전체 자료 중 20% 내외로 매우 높다고 한다. 그만큼 종류도 많고 이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자료를 갖추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임기수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책을 위한'이 아닌 '사람을 위한'
[제주 촌놈의 유럽 도서관기행] 영국의 작은 도서관
윈더미어마을 도서관
2011년 08월 05일 (금) 14:02:59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 원더미어 도서관 모습.마치 도서관이 아닌 가정집 같다.  
 
#작아서 더 단단한


켄달도서관과 이웃한 피터 래빗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로 유명한 윈더미어마을.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에도 작지만 운치가 넘치는 마을도서관 있었다. 이 도서관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수요일과 일요일은 휴관하고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평일엔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이곳 어린이 열람실에는 '숙제 도우미'제도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도서관을 찾으면 사서의 도움을 받아 숙제할 때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는데 도서관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인근 초등학교에서 숙제를 해오지 못하는 어린이의 숫자가 대폭 줄어서 학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영어에 익숙지 못한 이주민 자녀와 부모로부터 방치되는 저소득 맞벌이 가정 아동의 학습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유용한 제도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어린이 열람실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 원더미어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 내부 모습.  
 
   
 
  ▲ 원더미어 도서관 이용시간 안내표.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도서관은 초등학교 의무교육처럼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돈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 백과사전이나 컴퓨터가 집에 없더라도 아이들이 숙제를 자기 힘으로 하며 요새 유행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익힐 기회를 마련해 주는 곳이 바로 도서관인 것이다.

특히 영국은 어린시절부터 도서관이 공동체 문화를 경험하는 장소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북 스타트 운동'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에서는 아이 키우는 집에 동화책이 스무 권만 있어도 엄마들이 눈이 휘둥그레 놀란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다보면 되기 때문에 전집을 구입하는 것, 아이 책으로 서가를 채우는 건 상상도 못한다.

앞서 소개한 영국 컴브리아 지역의 켄달도서관의 '책보따리'(story sacks)도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0-3세 아기들을 위한 책과 인형, 독후활동 교구들을 가방에 패키지로 만들어서 대출하는 시스템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돈'과 전쟁을 한다고 하소연하는 우리나라의 부모들에게 단비와 같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평일에는 사서들이 돌아가면서 영·유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방학 기간에는 14세-2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책읽어주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이른바 공동육아. 보육 시스템이다. 도서관이 이런 기능까지 도맡으며 지역의 중심이 되고 있다. 한편으로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문화의 색깔로 채우다

영국의 마을 도서관에는 영어뿐만 아니라 불어, 그리스어, 터키어, 인도어, 아랍어, 중국어 등 온갖 언어로 된 어린이 책을 다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도서관 이용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고 풍부한 문화 감수성을 지닌 채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 읽는 공간이 아니라 연극, 무용, 음악공연도 수시로 펼쳐지고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동네사랑방'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백 오십년에 이르는 강력한 도서관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의 공공도서관. 영국 시민 열 명중 여섯명이 도서관 회원증을 갖고 있으며 특히 어려서부터 책과 함께 자라온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도서관 이용률이 50%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난 수 십년간 도서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금 새로운 도서관 르네상스를 이루자는 영국 시민사회 움직임의 저력이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임기수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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