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고 따뜻한 설문대어린이도서관>

 

11월 28일, 나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이르게 공항에 도착했다. '그림책 문화 예술 활동가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한 강의를 맡았다. 훌륭한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지 않게 사실 나는 터무니없는 소양을 가졌다. 어떻게 두 시간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에 사실 며칠을 보냈었는데 공항에 늘어져있는 야자수 나무를 보는 순간 그 불편한 공포는 순간 까맣게 없어져 버렸다. 이미 3번 정도 제주도에 내려 와 보았지만, 혼자, 또 일과 관련된 방문은 처음이라 그런지 어릴 적 오던 제주와는 다른 설레임이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와 주신 관장님의 격이 없는 편안한 인솔로 즐겁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실은 처음 경험하는 도서관의 작은 규모와 분위기가 어색했고, 그것은 처음 내 행동을 조금 불편하게 했다. 딱딱하리라 기대했던 도서관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편했을 것 같았다. 강의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두 아이가 엄마와 도서관에 놀러왔다. 당연히, 원하는 책을 찾거나, 읽으러 혹은 무엇인가를 얻으러 왔을 것이다. 관장님이 남자꼬마를 무릎 위에 앉히고 책을 읽어 주었다. 기가 막힌 구연동화는 아니셨지만 애들과 공감하시려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내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팔고 다시 보았을 때 그들은 장난을 치며 키득 키득 거리고 있었다. 집중하지 않는 독서 시간 속에 어느덧 삼촌이었고, 동네 동생이 되었다. 한 동안 도서관 바닥은 놀이터가 되었다. 그냥 웃으며 뒹굴었다. 아이들은 한 권의 책에 그리 집중하지 않고 이것저것 건들어 보다, 그림을 그리고도 했고, 꼬마가 읽은 책이 내가 그린 책이라는 관장님의 소개 때문인지 날 의심의 눈으로 째려보기도 하고 강의 준비 중인 컴퓨터에 대롱대롱 걸려있는 내 스파이더맨 USB 고리도 건드렸다. 그들이 도서관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문을 열었는지 사실 나는 모른다. 그 아이들과 엄마는 결국 도서관에 그냥 놀러온 것 같았다. 그렇다. 도서관이란 사실 이런 것이었나 보다. 아이들과 책을 사랑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나도 몰랐다. 내 어릴 적 다닌 도서관의 기억이 이렇지 않았고, 내 성장한 후의 도서관도 이렇지 않았다.이 도서관이 내 머리속에 있는 도서관의 이미지와 달랐지만. 아이들에게 도서관이란 곳은 마음에 이렇게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은 목적을 위해 마음의 무게를 지고 들어가는 차가운 건물이 아니어야 한다. 얼마 전에 내 아이와 갔었던 그럴싸한 도서관이 떠올랐다.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도서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까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고,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졸졸 따라다니면서 불안해했던 내 모습도 기억났다. 내 옆의 가족도, 내 뒤, 내 앞의 가족들도 우리 가족과 같았다. 내가 이상적인 마음에 아이들과 자유롭게 도서관을 즐겼더라면 분명 눈총 받았을 거다. 내가 설문대 도서관에서 가졌던 강의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횡설수설 했던 2시간에 거짓말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놀다간 그 아이들과 그때의 분위기는 너무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있다. 남자꼬마에게 망가져서 낡은 스파이더맨 USB고리를 떼서 주었다.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나를 만났었다는 기억을 해달라는 뜻도 아니었다. 그냥 나도 이 도서관이 주는 편하고 따뜻함에 같은 것 하나 더 얹혀 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공간이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오랜만에 경험한 좋은 날이었다. 바라건데, 오래 뒤 내 아이의 도서관에 대한 기억도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림책작가 오정택>

     

      그림책문화예술활동가 교육을 통해 알게 된 오정택 선생님께서 설문대에 보내주신 편지와 그림선물입니다.

       예쁘고 정겨운 그림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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